윤봉길 의거와 상하이의 뇌성 (서기 1932년) 역사 자료 이미지

윤봉길 의거와 상하이의 뇌성 (서기 1932년)

도시락 폭탄이 세계를 뒤흔든 날. 24세 청년의 결의가 독립운동을 부활시키다

  • 연도: 1932
  • 시대: 일제강점기
  • 상대: 일본 제국
  • 장소: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
  • 피해: 일본 주요 군·정 인사 다수 사살, 윤봉길 의사 순국

본문

서기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40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천장절(덴노 생일) 및 상하이 점령 축하식이 열리고 있었다. 수천 명의 일본 군인과 거류민, 그리고 일본군 수뇌부가 도열한 가운데 국가가 울려 퍼졌다.

본문 관련 역사 자료 이미지

바로 그때, 단상을 향해 폭탄이 날아왔다. 굉음과 함께 연단이 불바다가 되었다. 폭탄을 던진 이는 스물네 살의 조선 청년, 윤봉길 의사였다. 이 거사로 상하이 주둔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은 즉사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은 실명했다. 주중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다리를 잃었고, 거류민단장 등 다수가 중상을 입었다.

본문 관련 역사 자료 이미지

일본 군부의 핵심 인물들이 한꺼번에 쓰러진 것이다. 이 소식은 전 세계에 타전되어 한국 독립운동의 존재를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윤봉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12월 19일 가나자와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만 24세였다.

본문 관련 역사 자료 이미지

그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다. "나는 적국의 수괴를 죽인 것이 아니라, 침략자를 처단한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그의 의거는 단독 행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의 계획된 작전이었다. 윤봉길 의거의 가장 큰 성과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태도 변화였다.

본문 관련 역사 자료 이미지

장제스 총통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 한 명이 해냈다"며 감탄했고,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윤봉길 의거는 침체되어 가던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임시정부가 중국의 지원 아래 광복군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의의

한국 독립운동의 국제적 위상 제고. 중국 정부의 임시정부 지원 계기 마련.

출처

  • 윤봉길 전기
  • 상하이 폭탄 사건 기록
  • 임시정부 자료
  • 중국 측 문서

관련 카드

한의 역사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