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하는 청년들과 말살된 이름 (서기 1926-1940년) 역사 자료 이미지

절규하는 청년들과 말살된 이름 (서기 1926-1940년)

펜 대신 투쟁의 기치를 든 학생들의 함성과 강제로 빼앗긴 조상의 이름. 영혼까지 지배하려 했던 가장 교활한 탄압의 세월

  • 연도: 1926-1940
  • 시대: 일제강점기
  • 상대: 일제 (민족 말살 통치기)
  • 장소: 경성, 광주 및 조선 전역
  • 피해: 수천 명의 학생 검거 및 전 가구 창씨개명 강요

본문

서기 1926년 6월 10일, 순종 황제의 장례 행렬이 지나는 종로 거리는 다시 한번 독립의 열기로 뜨거워졌다.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6·10 만세운동'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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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곳곳에서 터져 나온 만세 소리는 억눌려 있던 민중의 가슴에 다시금 불을 지폈고, 학생들은 시대의 최전선에서 조국 독립을 위한 새로운 주역으로 떠올랐다. 학생들의 저항은 1929년 11월, 광주에서의 충돌을 계기로 전국적인 항일 투쟁으로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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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생들의 한국 여학생 희롱 사건에서 시작된 분노는 단순한 싸움을 넘어 민족 차별에 저항하는 거대한 항쟁이 되었다. 광주역 광장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전국 194개 학교, 5만 4천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 민중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낡은 교실의 창문을 열고 거리로 뛰어내려, 식민지 교육의 허구성을 고발하며 자주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은 단순히 신체적 억압을 넘어 민족의 영혼을 말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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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일제는 '창씨개명'을 통해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했다. 조상이 물려주신 성을 지키려 했던 많은 이들이 갖은 불이익과 고문 앞에 무릎을 꿇거나, 끝내 거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줄을 이었다. 이름을 뺏긴다는 것은 곧 존재의 뿌리를 부정당하는 것이었으며, 영혼까지 일본인으로 개조하려 했던 일제의 가장 비열한 책동이었다.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전당이 아닌, 전쟁을 위한 인적 수탈의 장소로 변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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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학생들은 펜 대신 총검술을 익해야 했고, 매일 아침 일본 천황이 있는 방향을 향해 강제로 절하는 신사참배를 요구받았다. 우리말을 쓰는 것조차 금지된 교실에서 아이들은 침묵하며 슬퍼했다. 민족의 언어와 역사가 사라져가는 그 어두운 공간 속에서도, 아이들은 책상 밑으로 우리글을 몰래 적어 내려가며 잃어버린 조국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썼다. 이 시기 청년 전사들의 절규는 바로 멸망해가는 민족의 마지막 심장 박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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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총칼의 위협 속에서도 "조선 독립 만세"를 적은 전단지를 뿌리며 거리를 누볐고, 빼앗긴 이름 대신 독립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긴 채 감옥으로 향했다. 비록 육체는 쇠창살 아래 갇혔을지라도, 그들의 투쟁은 민족의 혈맥 속에 흐르는 자긍심을 지켜내는 숭고한 방벽이 되었다. 영혼까지 빼앗으려 했던 일제의 야욕은, 끝내 굴복하지 않는 청년들의 뜨거운 심장 앞에 가로막혀 좌절될 운명이었다.

의의

학생 중심의 조직적 항일 운동 체계화와 민족 정체성 수호 투쟁. 민족 말살 정책의 한계와 저항 의지 확인.

출처

  • 동아일보
  • 독립운동사
  • 조선총독부 경무국 기록
  • 학생 독립운동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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