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대해산과 의병의 불꽃 (서기 1907년)
나라를 지키던 군대가 해산당한 날. 총을 내려놓지 않고 의병이 된 군인들의 결의
- 연도: 1907
- 시대: 대한제국
- 상대: 일본 제국
- 장소: 한성(서울) 시위대 영문 및 전국
- 피해: 군인 다수 전사 및 자결, 전국적 의병전쟁 촉발
본문
서기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었다. 정미7조약의 비밀 부속 조항에 따라 일본은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을 단행했다.

서울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에서 해산 명령이 전달되던 날 오전 7시, 대한제국의 마지막 군대는 더 이상 나라의 군대로 남아있지 못하게 되었다. 수백 년간 사직을 지켜온 군의 전통이 일본의 칼날 앞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군인이 순순히 총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제1연대장 박승환 참령은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치욕보다 죽음을 택하겠다"며 자결했다.

이에 격분한 시위대 1대대의 장병들은 무기고를 열고 일본군에게 저항을 시작했다. 남대문과 동대문 일대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황궁과 일본 공사관 근처까지 총성이 울렸다. 제대로 된 무장도 없이 싸운 대한제국 군인들은 대부분 전사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전국 의병 봉기의 신호탄이 되었다. 해산된 군인들 중 상당수는 산으로 들어가 의병에 합류했다.

정규군 훈련을 받은 그들의 합류로 의병의 전투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전국 팔도에서 항일 의병전쟁이 불붙었다. 경기도의 이인영, 허위 부대부터 전남의 기삼연, 함경도의 홍범도까지, 전국이 전쟁터가 되었다. 이것은 조선 백성들이 일본에 맞서 벌인 첫 번째 전면적 무장 투쟁이었다. 일본은 남한대토벌작전을 감행하며 의병을 진압했다.

1907년부터 1911년까지 수만 명의 의병이 전사하거나 체포되었고, 민간인 피해도 막대했다. 그러나 이 의병전쟁은 국권을 빼앗긴 뒤에도 만주와 연해주로 이어져 독립군 활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군대 해산은 나라의 팔을 자른 것이었지만, 그 팔은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싸웠다.
의의
대한제국 군대의 공식적 소멸. 전국적 의병전쟁 촉발 및 항일무장투쟁의 기원.
출처
- 순종실록
- 일본 군정 기록
- 한국독립운동사
- 의병 관련 구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