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이그 특사와 고종의 눈물 (서기 1907년)
세계를 향해 외친 독립의 호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은 절규와 황제의 몰락
- 연도: 1907
- 시대: 대한제국
- 상대: 일본 제국 / 열강의 묵인
- 장소: 네덜란드 헤이그
- 피해: 특사 이준 순국, 고종 강제 퇴위
본문
서기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비밀리에 세 명의 특사를 이곳에 파견했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

그들의 임무는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대한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고종은 신임장을 품에 안은 특사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세계 열강이 우리의 억울함을 들어준다면,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강의 문은 닫혀 있었다. 일본은 이미 각국에 손을 써, 대한제국 특사의 회의 참석을 막도록 공작했다.

특사들은 회의장 문전에서 거부당했다. "외교권이 없는 나라의 대표는 참석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상태를 빌미로, 우리의 호소 자체를 외면한 것이다. 특사들은 회의장 밖에서 각국 대표들에게 호소문을 배포하고, 기자들을 만나 대한제국의 참상을 알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은 격분했다. 고종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아낸 일본 통감부는 즉각 보복에 나섰다.

이토 히로부미 통감은 대신들을 협박하여 고종 퇴위를 압박했고, 궁궐을 군대로 포위한 가운데 고종은 강제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순종이 즉위했으나 그것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통치권이 일본에 넘어갔다. 특사 중 이준은 헤이그에서 분사(憤死)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사인이 무엇이든, 나라를 구하지 못한 한이 그를 쓰러뜨린 것은 분명하다. 헤이그 특사 사건은 대한제국 외교의 마지막 시도이자 완전한 실패였다. 세계는 대한제국의 절규를 외면했고, 일본은 그 대가로 고종을 끌어내렸다. 이로써 대한제국의 국권은 3년 뒤 완전한 소멸을 향해 치닫게 되었다.
의의
대한제국 최후의 외교적 저항. 고종 강제 퇴위와 정미조약으로 실질적 주권 상실.
출처
- 순종실록
- 이상설 전기
-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기록
- 독립운동사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