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서양과의 충돌 (서기 1866년)
미지의 이양선과 평양 백성들의 격돌. 대동강에서 불타버린 서양과의 첫 만남
- 연도: 1866
- 시대: 조선
- 상대: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 장소: 평양 대동강
- 피해: 제너럴셔먼호 승무원 전원 사망, 조선인 다수 사상
본문
서기 1866년 음력 7월, 쇄국정책으로 굳게 닿힌 조선의 대동강에 전례 없는 손님이 나타났다.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는 중국에서 조선과의 통상을 모색하기 위해 평양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240톤급의 이 증기선에는 미국인, 영국인, 청나라인 등 약 20여 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과의 무역이라는 순수한(혹은 야심찬) 목적을 갖고 있었으나, 그것이 어떤 비극으로 끝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처음에는 경계와 호기심이 교차했다. 평안도 관찰사는 신속히 퇴거할 것을 명령했으나, 제너럴셔먼호는 장마철 불어난 물을 타고 평양 성벽 근처까지 올라왔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배의 승무원들이 조선 관리를 억류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강변에서 충돌이 일어나면서 양측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 번 피를 본 백성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물이 빠지면서 제너럴셔먼호는 모래톱에 좌초되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평양 군민은 총공격을 감행했다.

관리 박규수의 지휘 아래 화공(火攻) 작전이 펼쳐졌다. 불붙은 배들이 제너럴셔먼호를 향해 떠내려갔고, 거대한 증기선은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불길을 피해 강물로 뛰어든 승무원들은 물속에서 창과 돌팔매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은 신미양요(1871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미국은 자국 선원들의 죽음에 대한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으나, 조선은 "오랑캐가 먼저 도발했다"며 맞섰다. 결국 5년 후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공격하는 신미양요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조선이 서양 열강과 맺은 첫 번째 피의 만남이었으며,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고통스러운 개항과 근대화의 전주곡이 되었다.
의의
조선과 서양 열강 간의 첫 무력 충돌. 신미양요의 원인 제공 및 쇄국정책 강화의 계기.
출처
- 고종실록
- 승정원일기
- 미국 국무부 문서
- 병인양요·신미양요 관련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