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해 멸망 (서기 926년)
고구려를 계승한 '해동성국' 발해가 거란족의 기습 공세와 내부 결집력 약화로 단 15일 만에 허무하게 멸망함
- 연도: 926
- 시대: 발해
- 상대: 거란(요)
- 장소: 상경용천부 일대
- 피해: 발해 멸망 및 대규모 유민 발생
본문
서기 926년 1월, 북방의 강자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는 차가운 눈보라와 함께 제국 붕괴의 서막을 맞이했다. 동아시아 최강의 문화와 무력을 자랑하던 발해였지만,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정예 기병들이 성벽을 넘어 쏟아져 들어왔을 때 그 위용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찬란했던 당나라 스타일의 건축물들은 불길에 휩싸였고, 200여 년을 이어온 고구려 계승국의 영광은 단 15일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거란의 태조 야율아보기는 발해의 예상을 뒤엎는 전격적인 겨울 침공을 감행했다. 그는 짐승의 가죽으로 무장한 수십만 명의 기병을 이끌고 꽁꽁 얼어붙은 요동 벌판을 거침없이 가로질러 발해의 심장부를 향해 진격했다.

발해의 방어선은 거란 기병의 속도와 파괴력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주요 성들이 변변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한 채 차례로 함락되었다. 제국의 멸망은 외부적 무력뿐만 아니라 이미 내부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귀족들 간의 분열과 계급 갈등이 불러온 예견된 비극이기도 했다. 결국 발해의 마지막 군주 대인선(大諲譾)은 백색 옷을 입고 소복 차림으로 상경성 성문을 나와 거란의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영광스러웠던 '대진국(大震國)'의 국호가 지워지고 승리자의 발자국 소리만이 눈 덮인 광장에 울려 퍼졌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북방의 제국이 어떠한 장렬한 최후의 전투도 없이 허무하게 항복했다는 사실은 살아남은 발해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과 '한'을 남겼다. 나라를 잃은 발해의 유민들은 이제 생존을 위한 처절한 탈출을 시작했다. 태자 대광현을 비롯한 수만 명의 유민들은 거란의 칼날을 피해 눈 덮인 산맥을 넘어 남쪽의 고려로 향했다.

굶주림과 추위 속에 쓰러져가는 이들의 행렬은 요동과 한반도 북부를 잇는 길목마다 피눈물로 새겨졌다. 고려 태조 왕건은 이들을 '한 핏줄'이라 부르며 따뜻하게 맞이했으나, 발해라는 거대한 영토를 이민족에게 내어주어야 했던 민족의 상실감은 지우기 힘든 상처로 남았다. 거란군에 의해 자행된 발해 문명의 고의적인 파괴는 더욱 비참했다. 수많은 불교 사찰과 장엄한 궁궐들은 야만적인 불길 속에 타올랐으며, 발해가 이룩했던 독자적인 기록과 예술품들은 잿더미로 변해 겨울 하늘로 흩어졌다.

찬란했던 동쪽의 큰 나라가 불타버린 자리에 남은 것은 유민들의 구슬픈 노래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북방 영토에 대한 그리움뿐이었다. 발해의 멸망은 우리 역사에서 북방 영토를 실질적으로 상실하게 된 가장 결정적이고도 아픈 변곡점이 되었다.
의의
발해의 멸망으로 한반도 국가의 북방 영토 지배권 상실 및 대규모 고려 유입으로 민족적 통합 가속화.
출처
- 요사(遼史)
- 고려사
- 발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