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강 전투 (서기 663년)
멸망한 백제를 되살리기 위해 백제 부흥군과 일본(왜)의 원군이 나당 연합군과 벌인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 해전
- 연도: 663
- 시대: 백제부흥운동
- 상대: 당(唐)·신라 연합
- 장소: 금강 하구(백강)
- 피해: 왜군함 400여 척 침몰 및 백제 부흥군 궤멸
본문
서기 663년 8월, 금강 하구인 백강(白江)의 물결은 동아시아의 운명을 결정지을 거대한 격전장이 되었다. 멸망한 조국 백제를 되살리려는 부흥군과 그들을 돕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수백 척의 왜(일본) 함대가 나당 연합군의 철갑선들과 마주했다.

푸른 바다는 순식간에 수천 발의 화살과 불길로 뒤덮였고, 이 전투는 한반도 내의 전쟁을 넘어 한국, 중국, 일본이 뒤엉킨 역사상 최초의 국제 대전으로 기록되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왜의 구원병들은 백제 부흥의 희망을 안고 1,000여 척에 달하는 목조선들을 이끌고 백강으로 진입했다.

아침 안개를 뚫고 나타난 이들의 하얀 깃발은 백제 유민들에게는 구원의 빛이었으나, 당나라의 숙련된 해군에게는 그저 불태워야 할 먹잇감에 불과했다. 숫적으로는 왜군이 압도적이었으나, 당나라 수군은 이미 견고한 진형과 강력한 소환 장비를 갖춘 상태였다. 당나라 수군은 좁은 수로에 갇힌 왜의 함대를 향해 치명적인 화공(火攻)을 퍼부었다.

거대한 화전들이 하늘을 가르고 왜군의 목조선들에 박히자, 바다는 순식간에 거대한 불바다로 변했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배에서 배로 옮겨붙었고, 탈출하지 못한 병사들의 비명이 파도 소리를 압도했다. 당군의 압도적인 무기 체계와 전술 앞에 백제와 왜의 연합 작전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전투가 끝난 후 백강의 수평선은 그야말로 지옥의 풍경이었다. 부러진 돛대와 타버린 배의 파편들이 물결을 따라 떠다녔고, 맑았던 강물은 수만 명의 선혈로 검붉게 물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바닷물이 붉게 변하여 사흘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고 전해질 만큼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백제 부흥의 마지막 불꽃이 이 차가운 강물 속에서 영원히 꺼져버린 순간이었다. 이 패배로 인해 백제 부흥의 꿈은 완전히 좌절되었고, 살아남은 백제의 왕족과 지식인들, 그리고 기술자들은 일본열도로 망명하는 슬픈 항해를 시작했다.

정든 조국 산천을 뒤로하고 망망대해로 떠나는 이들의 작은 배 안에는 나라를 잃은 자의 절망과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만이 가득했다. 이들을 통해 백제의 찬란한 문화는 일본에 전해졌으나, 한반도에서 백제라는 이름은 이제 전설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백강은 승자의 함성보다 패자의 흐느낌이 더 깊게 새겨진, 우리 민족사의 가장 아픈 강물 중 하나로 남았다.
의의
백제 부흥운동의 최종 실패.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대대적 재편 및 일본의 국가 체제 정비 계기.
출처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편
- 일본서기
- 구당서 유인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