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 멸망 (서기 660년)
700년 사직의 해상 왕국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기습 공격과 내부 장수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멸망함
- 연도: 660
- 시대: 백제
- 상대: 당(唐)·신라 연합
- 장소: 요동 및 평양성 일대
- 피해: 백제 멸망 및 왕족·귀족 1만 2천 명 포로 발생
본문
서기 660년 7월, 찬란한 해상 제국이었던 백제의 사비성은 거대한 불길과 절망에 휩싸였다. 정예병 18만 명을 앞세운 나당 연합군이 금강 하구를 덮쳤을 때, 백제는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찬란했던 백제의 예술과 문화는 적군의 발길 아래 짓밟혔고, 700년 동안 이어져 온 찬란한 역사의 등불은 금강의 거센 물결 속으로 가라앉았다. 의자왕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비성을 버리고 웅진성으로 피신했으나, 그의 가슴은 후회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화려한 궁궐에서 보냈던 지난날의 안일함이 조국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 늦게 알았다.

굳게 믿었던 신료들은 흩어졌고, 성 밖에서 들려오는 적군의 함성은 백제의 종말을 알리는 장송곡처럼 울려 퍼졌다. 지도자의 한순간의 방심이 민족 전체에게 지울 수 없는 '한'을 안긴 순간이었다. 비극의 정점은 내부 장수 예식진(禮寔進)의 배신이었다. 예식진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주군인 의자왕을 포박하여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넘겼다.

대제국의 군주가 자신의 부하에 의해 결박되어 적진으로 끌려가는 광경은 백제인들에게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는 증오의 싹이 돋았고, 이 배신의 역사는 훗날 백제 부흥운동의 처절한 동력이 되었다. 사비성으로 다시 끌려온 의자왕은 승리자들 앞에서 굴욕적인 술 시중을 들어야 했다. 소정방과 김춘추의 술잔을 채우는 왕의 손은 가늘게 떨렸고, 이를 지켜보던 백제 유민들의 통곡 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군주로서의 존엄이 말살당한 이 장면은 기록을 통해 전해지며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에게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성 밖에서는 수천 명의 궁녀와 여인들이 절개를 지키기 위해 낙화암 절벽 위에서 금강으로 몸을 던졌다.

붉고 푸른 비단옷을 입은 여인들이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꽃잎이 지는 것 같았다고 하여 '낙화(落花)'라 불리게 되었다. 이들의 죽음은 백제가 가졌던 고결한 정신의 마지막 표현이었고, 흐르는 강물은 이들의 원혼을 싣고 서해로 흘러갔다. 멸망의 마지막 페이지는 당나라 배에 실려 강제로 압송되는 1만 2천 명의 백제인들이 장식했다.

왕족과 귀족, 그리고 기술자들은 짐승처럼 묶인 채 정든 금강의 포구를 떠나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고향 산천을 향해 목놓아 울었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고국의 연기를 보며 이들이 가슴에 품었던 한 맺힌 그리움은 훗날 이국 땅에서 백제라는 이름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노래가 되어 남았다.
의의
700년 백제 사직의 종료 및 나당연합군의 한반도 지탱 기반 형성. 이후 처절한 백제 부흥운동의 시작점.
출처
-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편
- 일본서기
- 구당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