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침략의 절정과 20만 포로의 비극 (서기 1253-1254년) 역사 자료 이미지

몽골 침략의 절정과 20만 포로의 비극 (서기 1253-1254년)

고려 역사상 유례없는 인명 피해가 발생한 시기. 2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이역만리로 끌려가고 본토는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함

  • 연도: 1253-1254
  • 시대: 고려
  • 상대: 몽골제국
  • 장소: 한반도 전역
  • 피해: 포로 20만 6천 명 및 무수한 학살 발생

본문

서기 1254년, 고려의 산하에는 곡소리조차 말라버린 적막만이 가득했다. 몽골의 파상공세가 극에 달했던 이해, 한반도 전역에서 몽골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간 백성의 수만 무려 20만 6,800여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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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달빛 아래 이역만리 몽골 땅으로 끌려가는 포로들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발걸음마다 맺힌 피눈물은 얼어붙은 대지를 적셨다. 이는 당시 전체 인구를 고려할 때 국가의 근간이 송두리째 뽑혀 나간 민족적 대재앙이었다. 침공의 현장은 인간의 존엄이 철저히 파괴된 아수라장이었다. 몽골군의 막사 주변에는 끌려온 고려 백성들을 물건처럼 거래하는 노예 시장이 섰으며, 그곳에서 부모와 자식은 생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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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으며 딸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처절한 몸부림은 몽골 기병의 채찍 아래 무참히 짓밟혔다. 뒤돌아보며 아버지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는 북방의 거친 바람 속에 묻혔고, 한 번 헤어진 가족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의 길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무신정권이 버린 땅을 지킨 것은 이름 없는 하층민들이었다. 충주 다인철소(多仁鐵所)의 천민과 장인들은 정규군조차 도망가는 위기 속에서도 철을 두드려 만든 조잡한 무기를 들고 최강의 몽골군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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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죽을 뿐 도망가지 않는다"는 그들의 외침은 강화도에 숨은 귀족들의 비겁함을 꾸짖는 천둥소리와 같았다. 민초들의 끈질긴 항전은 몽골군에게 극심한 피로를 안겨주었으나, 승리의 기쁨보다 더 컸던 것은 항전 뒤에 몰아친 잔인한 보복 학살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찾아온 겨울은 죽음보다 가혹했다. 마을은 잿더미가 되어 쉴 곳이 없었고, 몽골군이 지나간 자리에는 곡식 한 톨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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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의 말발굽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머니들은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성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어둠 속에서 숨을 죽였다. 굶주림에 지친 아이들이 마른 나무껍질을 씹으며 연명하는 동안, 고려의 자부심은 몽골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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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비극은 고려 역사상 가장 뼈아픈 상흔을 남겼다. 조정은 결국 1259년 몽골에 굴복하며 30년 항전의 마침표를 찍었으나, 그 대가로 강산에 뿌려진 백성들의 피와 잃어버린 20만 명의 영혼은 결코 보상받지 못했다. 이들의 희생은 훗날 원 간섭기라는 굴욕의 시대를 견디게 하는 저력이 되었으며, 동시에 권력층이 백성을 보호하지 못했을 때 어떤 참담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의 경고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의의

한민족 역사상 단기간 최대 규모의 강제 납치 및 살상 사건. 민초들의 자생적 항전 의지와 희생 부각.

출처

  • 고려사 세가
  • 고려사절요
  • 원사(元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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