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간섭기와 굴욕의 시대 (서기 1270-1350년대) 역사 자료 이미지

원 간섭기와 굴욕의 시대 (서기 1270-1350년대)

세계 제국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고려. 자주성을 잃고 복식과 풍습까지 강요당했던 민족사의 어두운 터널

  • 연도: 1270-1350s
  • 시대: 고려
  • 상대: 원(元)나라
  • 장소: 고려 전역 및 북방 영토
  • 피해: 약 80년간의 주권 침해 및 영토 상실

본문

서기 1270년, 삼별초의 항전이 제주도에서 비극적으로 끝났을 때, 고려는 더 이상 예전의 자주독립국이 아니었다. 세계를 정복한 원(元)나라는 고려를 멸망시키는 대신 자신들의 '부마국(사위 나라)'으로 삼아 철저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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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왕들은 어린 시절부터 원나라 궁궐에서 자라나며 몽골식 이름과 변발, 몽골 옷을 강요받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원 황제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던 고려 왕들의 뒷모습은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고려의 행정 체계 또한 원나라의 직접적인 간섭 아래 놓였다. 원은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설치하고 '다루가치'라 불리는 감찰관들을 파견하여 고려의 내정을 낱낱이 간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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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몽골 관리들이 고려의 조정 높은 곳에 앉아 호령할 때, 고려의 관리들은 그들의 눈치만을 살피는 처지로 전락했다. 왕실의 칭호는 격하되었고, 국가의 주요 결정권은 개경의 궁궐이 아닌 원나라 대도의 황궁에서 결정되었다. 그것은 천 년 사직을 이어온 고려인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굴욕의 나날이었다. 문화와 풍습조차 몽골의 색채로 물들어갔다. 개경의 거리에는 몽골식 모자인 고고관을 쓰고 몽골식 겉옷인 철릭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났으며, '연고'나 '수라' 같은 몽골어 단어들이 일상 속으로 침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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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유의 아름다움은 퇴색되고, 지배자의 문화를 따라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시대상 속에서 고려인들의 자부심은 점차 희미해졌다. 몽골식 풍습인 '몽골풍'이 유행하는 이면에는,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지 못한 자들의 서글픈 순응과 한이 서려 있었다. 영토의 상실은 더욱 뼈아팠다. 원은 고려의 북쪽 국경인 화주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철령 이북의 광활한 영토를 자신들의 직접 지배 아래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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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대대로 지켜온 땅에 몽골의 깃발이 꽂히고 거대한 경계석이 세워질 때, 고려 백성들은 자신의 고향 땅에서 이방인이 되어야 했다. 국토의 허리가 잘려 나간 참담한 풍경은 고려인들에게 언제 끝날지 모를 절망감을 안겨주었으며, 이는 훗날 공민왕이 영토를 회복하기 전까지 80년 동안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상흔으로 남았다. 궁궐 내부조차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몽골 공주 출신의 왕비들은 원나라의 위세를 등에 업고 고려 국왕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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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국왕은 침실에서조차 원나라의 눈길을 피할 수 없었으며, 왕실의 후계 구도는 원 황실의 이해관계에 따라 요동쳤다. 이 시기 고려는 국가의 형태는 유지했으나 영혼은 거세당한 '껍데기뿐인 왕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가혹한 간섭기 속에서도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암암리에 수호했고, 이는 훗날 공민왕 시기의 반원 개혁 운동과 자주성 회복을 위한 거대한 불길의 밑거름이 되었다.

의의

한반도 역사상 가장 길었던 외세 간섭기. '몽골풍'이라는 문화적 변화와 독립성 상실의 시기.

출처

  • 고려사
  • 고려사절요
  • 원사(元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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