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 전쟁 및 귀주대첩 (서기 1010년~1019년) 역사 자료 이미지

고려-거란 전쟁 및 귀주대첩 (서기 1010년~1019년)

고려의 존망을 걸고 벌어진 거란의 3차례 침공을 막아내고, 귀주에서 거란 대군을 섬멸하여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킨 위대한 승리

  • 연도: 1019
  • 시대: 고려
  • 상대: 거란(요)
  • 장소: 평안도 귀주 및 한반도 북부 일대
  • 피해: 거란 소배압의 10만 대군 중 수천 명만 생존

본문

서기 1019년 2월, 한반도 북방의 귀주 벌판에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바람과 함께 거란 10만 대군의 최후를 알리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고려의 노장 강감찬 장군이 이끄는 고려군은 퇴각하는 거란군을 귀주 벌판으로 몰아넣고 단 한 명의 적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기세로 총공세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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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동아시아의 패권국 거란은 이 벌판에서 그들의 정예 기병들을 모두 잃었으며, 고려는 이 승리를 통해 100년의 평화를 보장받는 위대한 역사를 썼다. 전쟁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거란의 2차 침공 당시인 1011년, 수도 개경이 함락되고 궁궐이 불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고려 현종은 신하 몇 명만을 데리고 빗속을 뚫고 전라도 나주까지 먼 길을 피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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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서 겪어야 했던 굴욕과 추위, 그리고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한 현종의 눈물은 훗날 고려를 다시 일으키는 강인한 의지의 원천이 되었다. 이 전쟁에는 이름 모를 수많은 영웅의 희생이 있었다. 특히 양규 장군은 7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수만 명의 거란 공급로를 습격하여 포로로 잡혀가던 수천 명의 고려 백성들을 구출해냈다. 결국 중과부적으로 화살더미 속에 장렬히 전사한 양규와 김숙흥의 최후는 고려인들의 가슴에 조국 수호의 불꽃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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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가 된 채 마지막 순간까지 활을 놓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은 고려가 결코 무너지지 않는 나라임을 전 세계에 선포한 상징이었다. 강감찬 장군의 전술은 치밀하고도 압도적이었다. 그는 홍진진 전투에서 소가죽 밧줄로 강물을 막았다가 일시에 터뜨려 도강하던 거란군을 수장시키는 기막힌 수공(水攻)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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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물길에 휩쓸려 나가는 적들의 비명 소리는 고려의 반격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자연의 힘과 지략이 합쳐진 이 전술은 거란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귀주에서의 거대한 매복으로 이어졌다. 귀주대첩이 끝난 뒤의 벌판은 거란군의 시신과 찢겨진 깃발로 뒤덮였다. 10만 대군 중 살아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이번 승리는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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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씻겨 내려가는 피비린내 속에 고려 장병들은 서로를 안고 승리의 기쁨과 먼저 간 전우들의 슬픔을 나눴다. 이 전쟁의 승리는 단순히 한 민족의 생존을 넘어,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맞추고 문화를 보존해낸 거대한 방벽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고려의 꺾이지 않는 기상은 지금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며, 위기 앞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민족의 저력을 증명하고 있다.

의의

거란의 침략 의지 완전 분쇄. 동아시아 다자간 세력 균형 유지 및 고려 문화의 전성기 진입.

출처

  • 고려사 강감찬전
  • 고려사절요
  • 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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