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 1차 침입과 귀주성 항전 (1231년)
세계 최강 몽골제국의 첫 침공. 30년 전쟁의 서막
- 연도: 1231.8-12
- 시대: 고려
- 상대: 몽골제국 (살리타이)
- 장소: 고려 전역
- 피해: 북계 지역 초토화, 민간인 대량 피해
본문
【서장: 세계를 정복한 제국】 13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이 세워지고 있었다. 몽골제국이었다. 1206년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한 후, 몽골군은 멈추지 않고 정복 전쟁을 벌였다. 금나라가 무너지고, 서하가 멸망했다. 중앙아시아의 호라즘 제국도 쓸려나갔다. 동유럽까지 몽골 기병이 밀어닥쳤다. 몽골군은 당대 최강이었다. 기마 궁술로 단련된 병사들, 뛰어난 기동력, 잔혹한 심리전. 저항하는 도시는 철저히 파괴하고, 항복하는 도시는 살려주는 전략으로 적을 굴복시켰다. 그 몽골제국의 시선이 고려를 향한 것은 시간문제였다. 【몽골과의 첫 접촉】 고려와 몽골의 첫 만남은 1218년이었다. 거란의 유민 집단이 몽골의 추격을 피해 고려로 도망쳤다. 몽골군이 이를 쫓아 고려 국경에 도달했다. 고려는 몽골과 함께 거란군을 토벌했다. 강동성 전투에서 거란군은 궤멸되었다. 이때 고려와 몽골은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몽골은 매년 공물을 요구했고, 고려는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이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1225년, 몽골 사신 저구유(著古與)가 고려에서 돌아가다가 압록강 근처에서 피살되었다. 누가 죽였는지는 불분명했다. 몽골은 고려의 소행이라 의심했다. 관계가 악화되었다. 1231년, 몽골제국의 오고타이 칸이 고려 원정을 명령했다. 살리타이(撒禮塔)가 이끄는 몽골군이 압록강을 건넜다. 【1231년 8월: 침공의 시작】 1231년 음력 8월, 몽골군 3만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로 침입했다. 몽골군의 첫 목표는 북계(北界)의 성들이었다. 함신진, 철주, 귀주... 고려 북방의 요새들이 차례로 공격받았다. 몽골군의 전술은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먼저 항복을 권유했다. 항복하면 살려주겠다, 저항하면 모두 죽이겠다. 심리전이었다. 많은 성이 싸우지 않고 항복했다. 몽골의 명성을 듣고 겁먹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성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귀주성의 항전: 박서의 분투】 귀주성(龜州城)은 달랐다. 귀주성을 지키는 것은 서북면 병마사 박서(朴犀)였다. 그는 몽골군의 항복 요구를 거절했다. "나는 오직 싸워 죽을 줄만 알지, 항복은 모른다." 몽골군이 공격해왔다. 귀주성은 작은 성이었다. 병력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박서와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화살이 빗발쳤다. 끓는 물과 돌이 성벽에서 쏟아졌다. 몽골군이 성벽에 접근하면 창과 칼로 막아냈다. 하루, 이틀, 사흘... 공방이 계속되었다. 몽골군은 당혹했다. 평소의 전술이 통하지 않았다. 작은 성 하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시간만 끌고 있었다. 결국 살리타이는 귀주성 공략을 포기하고 우회했다. 귀주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박서는 고려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귀주성의 승리가 전체 전황을 바꾸지는 못했다. 【개경을 향하여】 몽골군은 귀주성을 우회하여 남하했다. 저항하는 성은 공략하는 대신 그냥 지나쳤다. 목표는 수도 개경이었다. 개경을 장악하면 고려 전체가 항복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11월, 몽골군이 개경 근처에 도달했다. 고려 조정은 패닉에 빠졌다. 무신 정권의 집정자 최우(崔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싸울 것인가, 항복할 것인가? 결국 고려는 협상을 택했다. 몽골에 사신을 보내 화의를 청했다. 조건은 가혹했다. 막대한 공물을 바치고, 몽골 감찰관(다루가치)을 수용하며, 왕족을 인질로 보낸다. 고려 조정은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였다. 12월, 몽골군이 철수했다. 1차 침입은 끝났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강화도 천도: 항쟁의 결심】 몽골군이 물러가자마자 무신 정권은 결단을 내렸다. 1232년,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천도했다. 몽골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강화도는 천혜의 요새였다. 몽골은 분노했다. 고려가 약속을 어기고 항전 태세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다루가치를 살해하고, 공물도 중단했다. 1232년, 몽골의 2차 침입이 시작되었다. 이후 1259년까지 총 6차례에 걸친 침입이 계속되었다. 30년에 걸친 항쟁이었다. 【1차 침입의 피해】 1차 침입은 비교적 짧았다. 약 4개월간의 침공이었다. 그러나 피해는 컸다. 북계 지역이 초토화되었다. 많은 성이 함락되고,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다. 농토가 황폐화되고, 마을이 불탔다. 기록에 따르면 1차 침입 때 고려인 수만 명이 사망하거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올 재앙에 비하면 서막에 불과했다. 2차, 3차... 6차까지 이어진 몽골 침입에서 고려 인구의 상당수가 사망했다. 일부 학자는 고려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추정한다. 문화재 파괴도 막심했다. 황룡사 9층 목탑, 초조대장경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불탔다. 【종장: 30년 항쟁의 시작】 1231년 몽골 1차 침입은 고려 역사의 분기점이었다. 세계 최강 제국의 침략에 고려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일부는 항복했다. 박서처럼 끝까지 싸운 이도 있었다. 무신 정권은 강화도로 도망가서 항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육지의 백성들은 30년간 지옥을 겪어야 했다. 귀주성의 박서가 보여준 것은 몽골이 무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사항전하면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성이 그럴 수는 없었다. 몽골 침입기의 고려는 비극과 영웅이 공존하는 시대였다.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살리타이를 죽였고, 충주성에서 노비와 천민들이 끝까지 싸웠다. 삼별초는 끝까지 항전했다. 그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1231년 8월, 몽골군이 압록강을 건넌 날이었다. 역사는 묻는다. 강대국의 침략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려는 30년을 버텼다. 결국 항복했지만,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았다. 그 항쟁의 기억은 한민족의 저항 정신으로 남았다.
의의
몽골제국 침략의 시작. 30년에 걸친 고려-몽골 전쟁의 서막.
출처
- 고려사
- 고려사절요
- 원사
- 몽골비사
- 동국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