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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와 홍범도의 함성 (서기 1920년)

만주 독립전쟁의 첫 승리. 일본 정규군을 격파한 홍범도 장군의 전설적 전투

  • 연도: 1920
  • 시대: 일제강점기
  • 상대: 일본군 월강추격대
  • 장소: 만주 봉오동 일대
  • 피해: 일본군 157명 사살, 독립군 완승

본문

서기 1920년 6월 7일, 만주 봉오동 골짜기에서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과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군 등 연합 독립군 약 700명이 일본군 월강추격대 1개 대대를 매복 공격해 격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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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첫 번째 대승이었다. 험준한 산악 지형을 완벽하게 활용한 독립군의 전술 앞에 일본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전투의 발단은 6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군이 함경북도 종성군에 진입해 일본군 초소를 습격한 것이다. 이에 분노한 일본군은 만주로 대규모 추격대를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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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홍범도 장군의 계략이었다. 그는 일부러 일본군을 만주 깊숙이 유인했다. 끝없이 펼쳐진 삼림과 험준한 골짜기는 독립군에게는 고향 같은 땅이었지만, 일본군에게는 죽음의 덫이었다. 6월 7일 아침, 봉오동 골짜기에 들어선 일본군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 세례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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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능선에 포진한 독립군 사수들이 정확한 사격을 퍼부었고, 일본군 대열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전진도 후퇴도 못하는 협곡에서 일본군은 대패했다. 전투는 약 7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일본군 157명이 전사·부상당한 반면 독립군 피해는 경미했다. 봉오동 전투의 승리 소식은 국내외 한인 사회에 큰 희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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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이후 탄압받던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력이 불어넣어졌다. 이 전투는 4개월 뒤 벌어지는 청산리 대첩의 전주곡이었다. 홍범도 장군의 이름은 '날아다니는 장군(비장군)'이라는 별명과 함께 일본군 사이에서도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봉오동의 함성은 독립군 무장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승리의 나팔이었다.

의의

독립군의 첫 대규모 승리. 무장 독립투쟁의 가능성 입증 및 청산리 대첩의 전주곡.

출처

  • 홍범도 일지
  •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록
  • 일본군 전투상보
  • 독립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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