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적의 침입과 개경의 수난 (서기 1359-1361년) 역사 자료 이미지

홍건적의 침입과 개경의 수난 (서기 1359-1361년)

원나라 말기의 혼란 속에 한반도를 덮친 홍건적의 물결. 두 번의 수도 함락과 공민왕의 처절한 피난길

  • 연도: 1359-1361
  • 시대: 고려
  • 상대: 홍건적
  • 장소: 서경(평양), 개경(개성) 및 안동 일대
  • 피해: 두 차례의 수도 함락 및 전 국토 유린

본문

서기 1361년 겨울, 고려의 수도 개경은 붉은 두건을 쓴 거대한 인간의 물결에 휩싸였다. 원나라의 지배에 저항하며 일어난 홍건적 20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남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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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알 수 없는 적들의 함성과 횃불이 밤하늘을 가득 메울 때,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개경의 성벽은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는 거란과 몽골의 침략을 견디며 지켜온 고려의 자존심이 다시 한번 처참하게 짓밟힌 순간이었다. 개경이 함락되자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신하들을 데리고 남쪽 안동(당시 복주)으로 짧고도 긴 피난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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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왕과 왕비가 탄 수레가 험준한 산길을 넘을 때, 그들을 따르던 군사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신음했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소자가 어찌 낯을 들겠습니까"라며 하늘을 향해 탄식했던 공민왕의 한은 안동의 차가운 강물 위로 짙게 퍼져 나갔다. 왕실의 피난은 백성들에게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주인이 떠난 개경은 홍건적의 잔혹한 약탈로 지옥이 되었다. 화려했던 궁궐의 비단들은 갈기갈기 찢겨졌고, 수백 년간 보존되어 온 문헌들은 불쏘시개가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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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된 시신들이 거리마다 산을 이루었고, 타오르는 건물의 불길은 며칠 밤낮을 꺼질 줄 몰랐다.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하고자 했던 서경(평양)에 이어 개경까지 약탈당하자, 고려인들은 국가의 물리적 멸망보다 더 깊은 문화적 파멸의 공포를 느껴야 했다. 하지만 어둠이 가장 깊을 때 새로운 영웅들이 나타났다. 젊은 장수 이성계와 최영은 눈 덮인 만월대를 가로지르며 처절한 탈환전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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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년 1월, 고려군은 목숨을 건 총반교전을 펼쳐 홍건적을 개경 밖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피로 물든 눈밭 위에서 승전고가 울릴 때, 고려 백성들은 비로소 희망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이 전투는 훗날 조선을 건국하게 되는 이성계라는 인물이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다시 돌아온 개경에서 공민왕은 폐허가 된 궁궐을 바라보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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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단순한 복구를 넘어, 원나라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나 잃어버린 북방 영토를 되찾고 국가의 기틀을 바로잡고자 했다.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은 고려에 엄청난 상처를 남겼으나, 동시에 고려인들에게 자주독립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일깨워준 시련의 용광로이기도 했다. 이 폐허 위에서 시작된 공민왕의 개혁 정치는 한민족이 다시 한번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려 했던 위대한 도전의 시작으로 기록되었다.

의의

고려 말기 국방 시스템의 붕괴와 신흥 무인 세력(이성계, 최영)의 등장을 알린 사건. 공민왕의 자주 개혁 의지 고취.

출처

  • 고려사 공민왕 세가
  • 고려사절요
  • 태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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